술 한방울도 못마시는 조용한 아빠. 사람들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엄마. 오늘도 엄마가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오는 날로 또 동네 시끄럽게 싸울게 뻔했다. 그러다 엄마가 창가로 뛰어 내리겠다고 하면 울고불고 나는 말려야 했다. 그렇기에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면 눈치를 봐가며 아빠가 기분이 좋을 수 있게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썼다.
“아빠 엄마 오면 안싸울꺼지..?”
밝은척 물어보지만 목소리 밑은 떨림이 가득하다. 아빠는 그저 대답없이 창가 넘어로 보이는 길목을 뚫어져라 보며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을 주시하기만 했다.
나는 항상 기도한다..
“엄마 빨리 들어오게 해주세요. 안싸우게 해주세요.”
기도 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어쩌다 문을 열고 엄마가 반겨주는 날이 오면 환호의 세레머니를 하며 집을 방방 뛰어다녔지만 내 마음과 다르게 엄마는 참 무심했다. 아니 무심을 넘어 방임에 가까웠다.
5살 처음 유치원에 같이 갔을 때, 나를 두고 도망을 갔던 기억.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몇 날 며칠을 어디론가 사라져 슬픔을 삼켰던 날들. 하교 후 비가 내릴때는 데리러 올 수 있었어도 그러지 않아 나는 비를 맞고 가야만 했던 일.
나는 여덟. 엄마는 서른 여덟
다른 엄마들을 보면 자식 밖에 모른다는데 참 애석하기만 했다.
밥 먹기 전부터 아빠가 먼저 올지 엄마가 먼저 올지 신경이 쓰인 채 밥상을 차린다.
방안에 티비를 켜고 만화채널로 돌린다. 상을 방안으로 가져와 펼치고 밥과 반찬을 가져온다. 국은 온기가 아직 있어 그대로 먹는다.
한 그릇 해치우고 두 그릇.
다 먹고도 배가 부른것 같지 않아 반 그릇을 더 푼다. 밥을 다 먹으면 스낵면을 가져온다.
“땅땅땅 삭삭삭”
라면을 부시고 스프를 넣고 흔든다. 그리고 또 먹는다.
곧 해는 저물어 어두워진다.
그렇게 만화를 보며 채워 넣을 순간이 잠시나마 행복하다.
불도 켜지 않고 티비 앞에 앉아있다.
엄마가 먼저 방의 불을 켜주길 기다리며 감정의 허기를 채운다